2023년 올해의 베스트


2022년에 이어서 올해의 마지막날, 2023년의 베스트를 뽑아보았다.

올해의 영화

오펜하이머, 올 연말에 벌어진 슬픈 일이 영화 속 오펜하이머가 겪었던 상황과 겹쳐 보여서 요즘 다시 또 생각나는 영화.

경쟁작: 라쇼몽,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올해도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구나, 나는 영화를 별로 안 보나 보다ㅠㅠ

올해의 책

하드씽, 지난 3~4년을 정리하는 책으로 좋았던 책이다. 이론으로 이해하는 것과 그걸 실천하는 건 다른 일이긴 하나, 그래도 어떻게 할지는 알아야 실천으로 갈테니.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대표를 한다거나, 리더의 자리가 된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이 너무 유명해서 굳이 안 말해도 아실 거 같긴하다만.

경쟁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즈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

올해의 글

외로움, 알고도 쉽게 못 고치는 가혹한 질병이다, 주변에 하나 둘 아픈 사람이 생길 만한 나이가 되었는데, 실제로 아픈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데 전부다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에 병이 생긴 사람들만 있다. 우리나라가 제일 못하는게 이게 아닌가 싶다. 커뮤니티 사이트는 많지만 정작 커뮤니티는 없는.

경쟁작: 없음

올해의 노래

OMG – NewJeans, 음악만 듣기 위해 따로 만들어서 쓰던 유튜브 계정을 올해 중반에 잃어버렸다. 치매로 많은 기억들을 잃어버린 사람마냥 그걸 잃어버리고 나니 내가 무슨 음악을 들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실제로 운전하면서 듣는 음악이 팟캐스트로 바뀐 영향도 있기도 하고. 그래도 올해의 노래를 뽑아야 하니, 2023년 동안 가장 많이 듣던 노래가 뭘까 고민하다가 결국 노동요로 많이 나오는 뉴진스 노래였고 그 중에 OMG가 가장 많이 들었던 듯 하다. 5월에 유럽여행 갔을 때도 들었던 듯하고. 이거 말고 분명 뭔가 더 있을거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네.

경쟁작: Jazzy House Mix at a Cocktail Lounge – Tinzo

올해의 앨범

물고기 – 백예린,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의 앨범이 올해 나온 앨범이 아니다. 작년에 나왔을 때 듣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올해 운전하다가 듣다가 틈만 나면 계속 틀게 되는 앨범이 되었다. 첫곡인 <그게 나였네>도 그렇고 타이틀곡인 <물고기>도 그렇고 가사가 좋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땅 위에서 사는 물고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다들 힘들지 없지 않을까?

경쟁작: Zip – Zion.T, 요아소비 전곡 플레이리스트

올해의 회사

없음, 2023년 회고를 하다가 깨달았다. 이 항목에 들어갈 회사가 없다는 것을. 사실 이름은 올해의 회사이지만,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 쓰면, <올해 놀랄 만한 모습을 보여준 2023년 최고의 스타트업>이 더 정확하다. 이전에 비해 크게 성장해야 한다는 기준 때문에, GPT와 ChatGPT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OpenAI 같은 회사들도 안된다. 그래서 고민을 해보고, 다른 곳에 질문도 올려고 보고 했는데 결국엔 못 찾았다. 올해는 수상자가 없다. 그래서 내가 연말에 더 슬펐나보다.

올해의 사진

모든 걸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했던 유럽여행. 이날이었나 아니면 다음 날이었나, 블라인드에 글이 올라오더니 결국 그 난리가 났다. 한 달 동안 떠나는 유럽여행이 Color에서 Grayscale로 바뀐 시점이 이때였다. 그리고 아직도 세상은 회색이다.

올해의 컨텐츠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이번에 새로 추가하였다. 운전과 달리기를 할 때 제일 좋은게 음악이 아니라, 팟캐스트를 듣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 보고 듣는 것들이 3가지 정도 있다. 그 중에 최고는 이동진 평론가가 하는 파이아키아가 아닐까 싶다. 지금 유튜브 가서 보니 동영상이 총 342개가 있는데, 내가 안 본 영화를 소개해서 스포 걱정에 일부러 안 본 것을 빼고는 올라온 영상을 다 봤다. 영화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보기만 했는데 이걸 보고 시선이 많이 넓고 깊어진듯하다. 반대로 영화를 볼 때, 예전보다 분석적으로 봐서 집중력이 다른 쪽으로 빠진다는 문제도 있긴하지만.

경쟁작: 아메리카노, 슈카월드

너무 무서운 꿈

무박 2일로 하는 해커톤에서 였다. 새벽 3시이 되자 만들건 다 만들고 슬 잠을 자야했다. 잠을 자라고 만들어 놓은 빈백 방에 가서, 집에서 들고 온 후디, 안대, 귀마개, 그리고 마스크까지 한 채로 담요를 덮고 빈백에 누웠다.

귀마개와 안대를 끼고 후드까지 뒤집어 쓰니 바깥과는 다르게 조용했고 나는 나대로 피곤했기에 금방 잠들었다. 그러다 새벽 어느 때인가 너무나도 무서운 꿈 때문에서 울면서 깼다.

꿈 속에서 난 회사 같은 곳에 있었다. 어디선가 연락을 받았고 그 소식 때문에 급하게 산부인과에 가는 중이었다. 내 애가 나왔는데 나오자나자 얼마 안되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가는 길 내내 우울하고 몹시 슬펐다. 병원에, 아니 병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에 들어갔고 보통 영정 사진이 놓여 있는 자리에 내 아이가 있었다. 오늘 태어나고 오늘 떠난 아이는 너무 작고 아담해 살아있는 듯 했다.

그게 첫 만남이었고 마지막 만남이었다.

생각과 생각이 눈물을 만들고 울음을 만들다 결국 터져버렸다. 결국 꿈에서 왕왕 울었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울었다.

꿈에서 깨어났지만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호흡도 계속 과호흡 상태였다. 그렇게 귀마개를 끼고도 의식 할 정도로 과호흡을 한참 하던 끝에 겨우 호흡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꿈을 잊기 위해 다시 이어서 잠들었다.

8시 즈음에 Staff 분들이 빈백룸에 있는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고 나도 그 때 일어났다. 안대를 벗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 안에 나만 있었다. 아직도 아까꾼 꿈을 떨쳐내지 못한 상태로.

대상을 노리고 준비했던 해커톤에서 아무런 수상도 못했다. 팀장이 발표를 할 때도, 심사위원분들이 긴 시간 심사에 들어 갔을 때도, 수상 발표를 하는 순간에도, 꿈에서 느꼈던 불안감이 수상 실패 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겹쳐 계속 계속 증폭되었다.

펑!

대상 발표까지 끝났을 때 내 표정은 어땠을까? 나는 어떤 슬픈 표정을 한 채로 박수를 치고 있엇을까. 그 때의 표정을 난 보고 싶지 않다.

꿈 속에서 울던, 안대 아래서 울던, 내 표정과 비슷했을 그 표정을.

2022년 올해의 베스트

2022년부터 매 연말에 올해의 베스트를 한번 뽑아보려고 한다. 너무 부담되지 않게, 그냥 가볍게 나열식으로.

올해의 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 영화 중 가장 박찬욱 영화 같지 않았던, 하지만 제일 좋았던 영화였다. 보고 나서 한동안 계속 생각나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 영화 보고 썼던 짧은 글

경쟁작: 탑건: 매버릭,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올해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구나, 그리고 좋은 영화도 별로 안 봤구나 싶다.

올해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친구에게 선물 받아 읽게 된 책. 글도 글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시의적절하게 읽은 책이라 이것도 읽고 나서 계속 기억이 났다. 책을 읽고 바로 블로그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바쁜 일 때문에 계속 미뤄져서 결국 그 때의 감정이 많이 옅어져 버리고 이제는 글을 쓸 수 없는게 올해 가장 슬픔 일들 중 하나였을 정도로. 서점에 갈일이 있다면 이 책을 펴고 첫 글만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이 책은 첫글이 첫눈처럼 제일 좋다. 그걸 바탕으로 나머지 글들이 소복히 쌓이는 그런 책이다.

경쟁작: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올해의 글

도어스테핑 특징은 도어스테핑, 판도라 행성에서 일어나는 SF 영화에서, 지구와 환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듯이, 정치에 대한 글에서도 정치를 넘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깨달을 때가 있다. 이 글이 그러했고, 오찬호님이 쓴 다른 글도 비슷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니, 올해 발견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이다.

경쟁작: 문화 현상이 된 ‘사랑의 언어’, 한국 경제와 한국 문명의 클라이맥스

올해의 노래

파노라마 – 이찬혁, 올해의 베스트 노래를 가장 많이 들은 걸로 해야 할지, 가장 인기 있었던 걸로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몇년 뒤에도 물어봤을 때 생각나는 노래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기준을 잡았다. 그런 기준에서 올해의 노래는 파노라마다. 넷플릭스 테이크원 악뮤편 초반에 이찬혁이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말이 이 노래를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나도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할텐데.

경쟁작: Antifragile – 르세라핌, 사건의 지평선 – 윤하

올해의 앨범

mono – 장기하와 얼굴들, 올해의 앨범이지만 올해에 나온 앨범은 아니다. 5년 전 앨범을 들었을 때 별 감흥이 없다가, 올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너무 좋았다. 전체 앨범은 아니고 4번 트랙부터 끝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앨범의 기준은 곡 하나하나가 아니라, 연속된 곡들이 좋아서 시작하는 곡을 들으면, 끊을 수 없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mono가 올해에 나에겐 그러했어서 올해의 베스트 앨범이 되었다. 참고로 4번 트랙부터 끝까지 들으면 30분짜리 달리기 코스 정도가 된다.

경쟁작: 밀양 박씨 최고의 아웃풋 – 앤더슨 팩, WinterStella – 스텔라장

올해의 회사

stability.ai, 2022년은 Generative AI가 엄청나게 나오고, AI 개발자가 관련 종사가 아닌 Early adopter까지 퍼진 중요한 한해였다고 생각한다(내가 쓴 관련 글). GPT-3도 그렇고, Dall-E도 그렇고 시작은 OpenAI 였지만, 실질적인 과실을 모두에게 주면서 얻는 것은 stability.ai와 같은 회사가 될 것 같다. OpenAI는 이름만 Open이고 너무 폐쇄적이어서. 2030년에 말하게 될 회사가 저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Open Source, Open Model로 하면서 이렇게 1조짜리 유니콘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낸다. (관련 영상)

경쟁사: MidJourney

올해의 사진

사랑의 언어

“챕맨이 말하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이렇습니다. 긍정의 말(칭찬), 의미 있는 시간(어떤 일을 같이하는 것), 선물(즉흥적인 꽃다발부터 더 가치 있는 것들까지), 상대를 위한 행동(집안일이나 요리를 돕기), 신체 접촉(손을 잡는 것부터 성관계까지).”

https://newspeppermint.com/2022/11/21/npc_love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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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세금 문제로, 즉 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걸 쏟는 양자경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내용이 진행 될수록 양자경은 돈이 아닌 사랑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간다.

사랑으로 돈 문제를 해결 할 순 없다. 영화도 그랬듯이. 그러나 돈으로도 사랑 문제를 해결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문제가 더 중요할까? 뭘 먼저 해결해야 맞을까? 그것에 대한 정답은 “영화에서도 그랬듯이”라 다시 한번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 나는 곧 죽는다.

계속 산다는 걸 가정하면, 삶은 계속 될거 같고 그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될지도. 그러나 죽음을 가정한다면, 역설적으로 어떻게 살것인가? 어떻게 할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곧이라는 단어가 몇개월일지, 몇년일지, 몇십년일지, 혹은 백년이 될지도 예상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곧 이라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시간에서 백년도 짧다. 1년이 100번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니.

헤어짐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헤어짐을 항상 마음에 두는 사람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음이 계속 생각나는 여름밤, 8월달.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말을 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영화 중에 가장 박찬욱 영화 같지 않았지만,
박찬욱 영화 중 제일 많이 생각 할거 같은 영화였다.

오늘 또 장면 하나가 계속 생각에 맴돈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가 “사랑한다”라고 말한 순간, 자신의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걸 들은 남자는 자신은 “사랑한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경찰답게 경찰처럼 말한다.

중간에도 장면으로 나오고 뒷부분에 남자 주인공인 음성녹음을 듣는 부분에서도 다시 들을 수 있지만, 남자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이 말한대로 남자는 사랑한다 라고 했다.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안 썼을 뿐.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말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말한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음성녹음을 다시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러나 듣는 사람은 분명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을.

영화의 끝에 도달해서야 겨우 남자는 여자가 한말은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자기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측면해서는 해피엔딩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엔 말한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들은 사람은 들었다고 말하는 현실이 산재하니.

우크라이나, 요가, 독재자

1. 남들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는 루틴이 주가 확인이라던데, 나의 루틴은 나무위키 우크라이나 전쟁 침공경과 문서를 보는 것이다.

2. 오늘 마지막 요가 수업하다, 뻣뻣한 내 몸을 보며 이게 뭔 소용인가 싶어졌다. 아침마다 죽은 사람 이야기를 너무 많이 보았나.

3. 넷플리스에서 <폭군이 되는 법>이라는 6화짜리 다큐를 보고 있는데, 2화 정도 더 추가해도 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지구를 찾아온 지적생명체는 왜 발견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면, 핵무기와 같은 자멸하는 무기도 갖게 되어 결국 우주여행 전에 자멸한다.라는 이론이 있었던 걸로 안다. 요즘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5.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 저 6화짜리 다큐를 볼 때도 그랬었지만, 우타나사나 자세도 제대로 못할거 같은 사람들이 뭔 사람을 그리 많이 죽이는지. 어찌 사람 죽이는게 요가보다도 쉬운지.

부끄럽지도, 미안하지도

  1. 살다보면 말실수를 하게 되고, 어떤 말 실수들은 너무 부끄러워 종종 생각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몇년 전에 했던 말실수도 그랬다. 여행이 가볍게 이야기하기 좋다는 생각에 새로 오신 인턴분들과 밥을 먹으면서 갔다 온 해외여행지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모험도 아닌 모험담 자랑을 하다가, 한 분이 아직 해외여행은 가보지 않았고 어디어디가 좋아보여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연하게도 다들 여행을 좋아할테고 3~4학년 즈음이니 다들 해외여행은 가봤을 거라고 단정을 하고 있었다. 이곳 이곳을 가보고 싶다는 말을 너무나도 진심있게 하셔서, 너무나도 죄송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그 분이 인턴이 다 끝나고 몇달 후에, 우리가 하던 서비스에 마카오와 홍콩 영상이 올라왔다. 잊지 않고 올려준 마음에 고마웠고 미안한 마음을 좀 덜 수 있었다.
  2. 우연히 다큐3일 붕어빵편을 틀게 되었는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마냥 소소하니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러다 영등포 쪽인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하던 붕어빵집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붕어빵 일을 틈틈이 돕던 아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청년이 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할머니 나이가 된 듯 했다. 1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모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해서 그런지 서로 행복해 보였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제주도를 한번도 못 가봤는데 같이 한번 가자고, 가면 여기와 완전히 틀리다고. 완전 다른 나라 같다는 이야기를. 아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으신지 어머니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듣 내내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레이션. 어머니는 노점상 일 때문에 평생 고향과 서울 이외에 다른 곳을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2022년까지도.
  3.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중요해보이지 않는 자리를 뽑는 날이 바로 내일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움 느끼지 않도록,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도록 어려운 사람들은 더 신경 쓰는 후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붕어빵 모자도 같이 제주도 여행 정도는 가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잠 안 올 때 읽기 좋은 책

암막 커튼을 닫고 불도 다 끄고 공기청정기 마져 수면모드로 바꾸면, 잠자기 위한 준비가 끝는다. 준비는 준비 일 뿐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폰을 꺼내 전자책을 읽는다.

화면을 가장 낮은 밝기로 거기에 전자책 뷰어 밝기도 절반 이하로 낮춘다. 그리고 배경은 검은색으로 글씨는 흰색으로 해놓으면, 칡흙 같은 방안에 누워 책을 읽을 준비가 모두 끝난다.

그렇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몇권의 책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걸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허지웅이 쓴 <살고 싶은 농담>이 있었다.

자는게 목적이기에 너무 재미있지도, 재미없이도 않은 책이 이 때 읽기 알맞았다. 장편 소설 같이 긴 내용은 다음에 읽을 때 까먹기 쉽기에 적절하지 않았고, 화면을 흑백으로 해놔야 하기에 사진이나 삽화를 봐야하는 여행책이나 미술 관련 책은 적절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하나하나씩 조건을 따지다보면 도무지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 전자책 서재에는 안 읽은 책이 8~9개나 있지만 그 중 맘에 드는게 하나도 없다.

마지 못해 <내 청약통장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꺼내 읽다가 뭔가 혼나는 기분에, 자꾸 과거로 돌아가 if…, If… 만 생각하게 되니 잠이 더 오질 않아 닫아버렸다. 한국의 레전설 명작 판타지인 <드래곤라자>을 꺼냈다가 “드래곤이야, 정말 화이트 드래곤이야”하는 첫 문장에서 패쓰. 이걸 잠 안올때 조금씩 읽으면 언제 전권을 다 읽나…

전자책 서점으로 다시 돌아가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 톨스토이 단편집을 다운 받았다. 톨스토이라면 작가의 책을 읽어본 사람보다 작가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유명 작가 아닌가! 단편이니 읽기도 좋을 것 같았다.

책의 첫번째 단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초반부를 읽는데 어디서 본듯 했다. 읽어본거 같기도 하고 단편집을 읽었으면 2~3개는 기억이 날텐데 기억이 없는거 보니 아닌거 같기도 하고. 일단 기억이 안나면 다시 읽어도 새 책을 만나는 것과 같으니 읽기로 했다.

불과 120년 전 세상은 가죽만 있으면 어떤 구두도 만들 수 있는 장인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었나보다. 내일 아침은 남은 빵을 남편과 아이들과 나눠먹으면, 저녁은 어떻게 할지 걱정하는 모습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게 메인 주제는 아니다, 완전 곁가지이지만 나에겐 이게 메인으로 느껴졌다.

120년 전에 있던 배고픔도, 내일 먹을 저녁에 대한 걱정도, 외투가 단 한벌 밖에 없어 겨울에는 부부 중 한명이 외출하면, 다른 한명은 밖에 나갈 없는 사정도,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시국은 소설 속 사람들과 우리가 비슷한 어려움을 격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는 캄캄한 밤을.

단편에서는 3가지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 대한 사랑,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의 한계, 그리고 타인에 대한 봉사로 알았지만 봉사를 하는 사람이 더 큰 행복을 얻게 된다는 사실까지.

그 때보다 더 풍요로워졌지만 왜 더 어려워졌을까? 하위 80%냐, 88%, 아니면 100%냐 하는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경제적 변수, 코로나라는 변수를 제거하고 계산 할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우는 뭘 위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

잠이 안와서 읽기 좋은 책을 찾았었다. 그러나 잠은 안오고 배는 그대로 아프고, 생각나다 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점심에도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후 내내 제법 짜증이 났나보다. 도무지 재밌는게 안 보였나보다.

잘 때 읽기 좋은 책이란, 너무 재미있지도, 재미없이도 않은 책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스트레스도, 고민도, 생각도 하지 않게 하면 더더욱 좋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서울에 산지도 10여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소리. 2호선을 타려다 이걸 듣고 깨달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도무지 회사에서 집중도 안되고 잠도 자다가 자꾸 깨고 하는 이 현상을 가장 쉽게 표현해 줄 한 마디가.

요즘 마음이 이렇다. 뭔가 곧 문이 닫칠거 같고 들어가다가 문에 끼일거 같고 그렇다. 단 한번도 지하철 문에 끼여본 적이 없지만 마음이 그렇다. 저 듣기 싫은 안내 방송처럼 계속 나를 쫒는,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