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올해의 베스트

2022년부터 매 연말에 올해의 베스트를 한번 뽑아보려고 한다. 너무 부담되지 않게, 그냥 가볍게 나열식으로.

올해의 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 영화 중 가장 박찬욱 영화 같지 않았던, 하지만 제일 좋았던 영화였다. 보고 나서 한동안 계속 생각나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 영화 보고 썼던 짧은 글

경쟁작: 탑건: 매버릭,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올해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구나, 그리고 좋은 영화도 별로 안 봤구나 싶다.

올해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친구에게 선물 받아 읽게 된 책. 글도 글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시의적절하게 읽은 책이라 이것도 읽고 나서 계속 기억이 났다. 책을 읽고 바로 블로그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바쁜 일 때문에 계속 미뤄져서 결국 그 때의 감정이 많이 옅어져 버리고 이제는 글을 쓸 수 없는게 올해 가장 슬픔 일들 중 하나였을 정도로. 서점에 갈일이 있다면 이 책을 펴고 첫 글만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이 책은 첫글이 첫눈처럼 제일 좋다. 그걸 바탕으로 나머지 글들이 소복히 쌓이는 그런 책이다.

경쟁작: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올해의 글

도어스테핑 특징은 도어스테핑, 판도라 행성에서 일어나는 SF 영화에서, 지구와 환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듯이, 정치에 대한 글에서도 정치를 넘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깨달을 때가 있다. 이 글이 그러했고, 오찬호님이 쓴 다른 글도 비슷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니, 올해 발견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이다.

경쟁작: 문화 현상이 된 ‘사랑의 언어’, 한국 경제와 한국 문명의 클라이맥스

올해의 노래

파노라마 – 이찬혁, 올해의 베스트 노래를 가장 많이 들은 걸로 해야 할지, 가장 인기 있었던 걸로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몇년 뒤에도 물어봤을 때 생각나는 노래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기준을 잡았다. 그런 기준에서 올해의 노래는 파노라마다. 넷플릭스 테이크원 악뮤편 초반에 이찬혁이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말이 이 노래를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나도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할텐데.

경쟁작: Antifragile – 르세라핌, 사건의 지평선 – 윤하

올해의 앨범

mono – 장기하와 얼굴들, 올해의 앨범이지만 올해에 나온 앨범은 아니다. 5년 전 앨범을 들었을 때 별 감흥이 없다가, 올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너무 좋았다. 전체 앨범은 아니고 4번 트랙부터 끝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앨범의 기준은 곡 하나하나가 아니라, 연속된 곡들이 좋아서 시작하는 곡을 들으면, 끊을 수 없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mono가 올해에 나에겐 그러했어서 올해의 베스트 앨범이 되었다. 참고로 4번 트랙부터 끝까지 들으면 30분짜리 달리기 코스 정도가 된다.

경쟁작: 밀양 박씨 최고의 아웃풋 – 앤더슨 팩, WinterStella – 스텔라장

올해의 회사

stability.ai, 2022년은 Generative AI가 엄청나게 나오고, AI 개발자가 관련 종사가 아닌 Early adopter까지 퍼진 중요한 한해였다고 생각한다(내가 쓴 관련 글). GPT-3도 그렇고, Dall-E도 그렇고 시작은 OpenAI 였지만, 실질적인 과실을 모두에게 주면서 얻는 것은 stability.ai와 같은 회사가 될 것 같다. OpenAI는 이름만 Open이고 너무 폐쇄적이어서. 2030년에 말하게 될 회사가 저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Open Source, Open Model로 하면서 이렇게 1조짜리 유니콘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낸다. (관련 영상)

경쟁사: MidJourney

올해의 사진

사랑의 언어

“챕맨이 말하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이렇습니다. 긍정의 말(칭찬), 의미 있는 시간(어떤 일을 같이하는 것), 선물(즉흥적인 꽃다발부터 더 가치 있는 것들까지), 상대를 위한 행동(집안일이나 요리를 돕기), 신체 접촉(손을 잡는 것부터 성관계까지).”

https://newspeppermint.com/2022/11/21/npc_love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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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세금 문제로, 즉 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걸 쏟는 양자경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내용이 진행 될수록 양자경은 돈이 아닌 사랑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간다.

사랑으로 돈 문제를 해결 할 순 없다. 영화도 그랬듯이. 그러나 돈으로도 사랑 문제를 해결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문제가 더 중요할까? 뭘 먼저 해결해야 맞을까? 그것에 대한 정답은 “영화에서도 그랬듯이”라 다시 한번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 나는 곧 죽는다.

계속 산다는 걸 가정하면, 삶은 계속 될거 같고 그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될지도. 그러나 죽음을 가정한다면, 역설적으로 어떻게 살것인가? 어떻게 할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곧이라는 단어가 몇개월일지, 몇년일지, 몇십년일지, 혹은 백년이 될지도 예상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곧 이라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시간에서 백년도 짧다. 1년이 100번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니.

헤어짐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헤어짐을 항상 마음에 두는 사람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음이 계속 생각나는 여름밤, 8월달.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말을 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영화 중에 가장 박찬욱 영화 같지 않았지만,
박찬욱 영화 중 제일 많이 생각 할거 같은 영화였다.

오늘 또 장면 하나가 계속 생각에 맴돈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가 “사랑한다”라고 말한 순간, 자신의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걸 들은 남자는 자신은 “사랑한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경찰답게 경찰처럼 말한다.

중간에도 장면으로 나오고 뒷부분에 남자 주인공인 음성녹음을 듣는 부분에서도 다시 들을 수 있지만, 남자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이 말한대로 남자는 사랑한다 라고 했다.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안 썼을 뿐.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말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말한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음성녹음을 다시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러나 듣는 사람은 분명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을.

영화의 끝에 도달해서야 겨우 남자는 여자가 한말은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자기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측면해서는 해피엔딩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엔 말한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들은 사람은 들었다고 말하는 현실이 산재하니.

우크라이나, 요가, 독재자

1. 남들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는 루틴이 주가 확인이라던데, 나의 루틴은 나무위키 우크라이나 전쟁 침공경과 문서를 보는 것이다.

2. 오늘 마지막 요가 수업하다, 뻣뻣한 내 몸을 보며 이게 뭔 소용인가 싶어졌다. 아침마다 죽은 사람 이야기를 너무 많이 보았나.

3. 넷플리스에서 <폭군이 되는 법>이라는 6화짜리 다큐를 보고 있는데, 2화 정도 더 추가해도 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지구를 찾아온 지적생명체는 왜 발견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면, 핵무기와 같은 자멸하는 무기도 갖게 되어 결국 우주여행 전에 자멸한다.라는 이론이 있었던 걸로 안다. 요즘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5.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 저 6화짜리 다큐를 볼 때도 그랬었지만, 우타나사나 자세도 제대로 못할거 같은 사람들이 뭔 사람을 그리 많이 죽이는지. 어찌 사람 죽이는게 요가보다도 쉬운지.

부끄럽지도, 미안하지도

  1. 살다보면 말실수를 하게 되고, 어떤 말 실수들은 너무 부끄러워 종종 생각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몇년 전에 했던 말실수도 그랬다. 여행이 가볍게 이야기하기 좋다는 생각에 새로 오신 인턴분들과 밥을 먹으면서 갔다 온 해외여행지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모험도 아닌 모험담 자랑을 하다가, 한 분이 아직 해외여행은 가보지 않았고 어디어디가 좋아보여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연하게도 다들 여행을 좋아할테고 3~4학년 즈음이니 다들 해외여행은 가봤을 거라고 단정을 하고 있었다. 이곳 이곳을 가보고 싶다는 말을 너무나도 진심있게 하셔서, 너무나도 죄송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그 분이 인턴이 다 끝나고 몇달 후에, 우리가 하던 서비스에 마카오와 홍콩 영상이 올라왔다. 잊지 않고 올려준 마음에 고마웠고 미안한 마음을 좀 덜 수 있었다.
  2. 우연히 다큐3일 붕어빵편을 틀게 되었는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마냥 소소하니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러다 영등포 쪽인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하던 붕어빵집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붕어빵 일을 틈틈이 돕던 아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청년이 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할머니 나이가 된 듯 했다. 1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모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해서 그런지 서로 행복해 보였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제주도를 한번도 못 가봤는데 같이 한번 가자고, 가면 여기와 완전히 틀리다고. 완전 다른 나라 같다는 이야기를. 아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으신지 어머니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듣 내내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레이션. 어머니는 노점상 일 때문에 평생 고향과 서울 이외에 다른 곳을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2022년까지도.
  3.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중요해보이지 않는 자리를 뽑는 날이 바로 내일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움 느끼지 않도록,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도록 어려운 사람들은 더 신경 쓰는 후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붕어빵 모자도 같이 제주도 여행 정도는 가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잠 안 올 때 읽기 좋은 책

암막 커튼을 닫고 불도 다 끄고 공기청정기 마져 수면모드로 바꾸면, 잠자기 위한 준비가 끝는다. 준비는 준비 일 뿐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폰을 꺼내 전자책을 읽는다.

화면을 가장 낮은 밝기로 거기에 전자책 뷰어 밝기도 절반 이하로 낮춘다. 그리고 배경은 검은색으로 글씨는 흰색으로 해놓으면, 칡흙 같은 방안에 누워 책을 읽을 준비가 모두 끝난다.

그렇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몇권의 책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걸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허지웅이 쓴 <살고 싶은 농담>이 있었다.

자는게 목적이기에 너무 재미있지도, 재미없이도 않은 책이 이 때 읽기 알맞았다. 장편 소설 같이 긴 내용은 다음에 읽을 때 까먹기 쉽기에 적절하지 않았고, 화면을 흑백으로 해놔야 하기에 사진이나 삽화를 봐야하는 여행책이나 미술 관련 책은 적절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하나하나씩 조건을 따지다보면 도무지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 전자책 서재에는 안 읽은 책이 8~9개나 있지만 그 중 맘에 드는게 하나도 없다.

마지 못해 <내 청약통장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꺼내 읽다가 뭔가 혼나는 기분에, 자꾸 과거로 돌아가 if…, If… 만 생각하게 되니 잠이 더 오질 않아 닫아버렸다. 한국의 레전설 명작 판타지인 <드래곤라자>을 꺼냈다가 “드래곤이야, 정말 화이트 드래곤이야”하는 첫 문장에서 패쓰. 이걸 잠 안올때 조금씩 읽으면 언제 전권을 다 읽나…

전자책 서점으로 다시 돌아가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 톨스토이 단편집을 다운 받았다. 톨스토이라면 작가의 책을 읽어본 사람보다 작가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유명 작가 아닌가! 단편이니 읽기도 좋을 것 같았다.

책의 첫번째 단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초반부를 읽는데 어디서 본듯 했다. 읽어본거 같기도 하고 단편집을 읽었으면 2~3개는 기억이 날텐데 기억이 없는거 보니 아닌거 같기도 하고. 일단 기억이 안나면 다시 읽어도 새 책을 만나는 것과 같으니 읽기로 했다.

불과 120년 전 세상은 가죽만 있으면 어떤 구두도 만들 수 있는 장인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었나보다. 내일 아침은 남은 빵을 남편과 아이들과 나눠먹으면, 저녁은 어떻게 할지 걱정하는 모습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게 메인 주제는 아니다, 완전 곁가지이지만 나에겐 이게 메인으로 느껴졌다.

120년 전에 있던 배고픔도, 내일 먹을 저녁에 대한 걱정도, 외투가 단 한벌 밖에 없어 겨울에는 부부 중 한명이 외출하면, 다른 한명은 밖에 나갈 없는 사정도,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시국은 소설 속 사람들과 우리가 비슷한 어려움을 격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는 캄캄한 밤을.

단편에서는 3가지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 대한 사랑,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의 한계, 그리고 타인에 대한 봉사로 알았지만 봉사를 하는 사람이 더 큰 행복을 얻게 된다는 사실까지.

그 때보다 더 풍요로워졌지만 왜 더 어려워졌을까? 하위 80%냐, 88%, 아니면 100%냐 하는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경제적 변수, 코로나라는 변수를 제거하고 계산 할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우는 뭘 위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

잠이 안와서 읽기 좋은 책을 찾았었다. 그러나 잠은 안오고 배는 그대로 아프고, 생각나다 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점심에도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후 내내 제법 짜증이 났나보다. 도무지 재밌는게 안 보였나보다.

잘 때 읽기 좋은 책이란, 너무 재미있지도, 재미없이도 않은 책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스트레스도, 고민도, 생각도 하지 않게 하면 더더욱 좋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서울에 산지도 10여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소리. 2호선을 타려다 이걸 듣고 깨달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도무지 회사에서 집중도 안되고 잠도 자다가 자꾸 깨고 하는 이 현상을 가장 쉽게 표현해 줄 한 마디가.

요즘 마음이 이렇다. 뭔가 곧 문이 닫칠거 같고 들어가다가 문에 끼일거 같고 그렇다. 단 한번도 지하철 문에 끼여본 적이 없지만 마음이 그렇다. 저 듣기 싫은 안내 방송처럼 계속 나를 쫒는,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는.

출처

주말에 친척 모임에 다녀왔다.

친척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 덧 정치 이야기를 하기 되었고, 좀 이야기하다보니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다.

막다른 곳의 주제는 ‘독재’였는데. 현 정권이 독재적이라는 어른들의 의견과 독재를 하고 싶어서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상 할 수 없다는 나의 의견이 대립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보니 말하고 있는 ‘독재’가 다른 내용임을 깨닫고는 다시 복기를 해보았다.

어른들이 말하는 ‘독재’는 청와대에서 너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의미의 독재였다. 각 부처 장차관들에게 나눠져서 알아서 하게 할 일들까지 청와대에서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독재는 박정희, 전두환 때와 비슷한 독재였었고.

어른들이 말한 문제는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친척 어른들 중에 정치계나 언론계에 있는 분은 없으니 어느 방송이나 신문이나 글에서 본 내용을 가지고 말 하셨을 것이다.

단톡방에서 돌던 카더라~ 내용도 아닌거 보니 어느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일텐데 어딘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사이트, 포털에서는 메인이나 많이 읽은 뉴스에 그런 걸 보여주지 않았고 못 봤으니.

나의 출처는 어떠한가? 내가 보는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들처럼 모든게 다 잘 되가는 방향인가? 단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방해만 안하면 되는 일인가? 그런 내용들의 출처는 어디일까?

예전처럼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9시에 다 같이 모여 뉴스를 시청하지도 않는다.

포털에서는 매시간 뉴스를 쏟아내지만 사설이나 분석적인 뉴스는 메인에 올라오지 않는다. 축구경기로 비유하자면 “손흥민 선수가 왼발 드리블을 했습니다”, “12번 수비수가 미끄러졌습니다” 같은 기사들만 있다. 이걸 봐서는 도무지 경기가 어떻게 된지, 어떤 선수가 잘했고 못 했는지 파악이 안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는 포털에서 보는 기사들이 다 이렇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어떠한가? 어느 정당보다도 확증편향으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 공유되고 퍼오는 기사들은 듣기 좋은, 상대를 욕하기 좋은 기사들만 있다. 여기서 뭘 얻을까?

각자 다른 출처에서 다른 이야기를 듣고,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21세기가 되면 지구촌은 아니더라도 모든 의견이 자유롭게 흘러 지역감정도 사람들 간의 이견도 줄어들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반대가 되었다. 흡사 부족 사회로 퇴화한듯하다. A라는 부족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는 B라는 부족에 가면 처음 듣는 이야기가 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A와 B가 대화하고 토론하자는건 좀 더 빨리 전쟁을 하자는 이야기 밖에 안 될 것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나도 이젠 모르겠다.

한정식

이걸 싫어한다고 해야 할지 좋아한다고 해야할지.

생일 같이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밥을 고를 수 있는 날이 1년에 2~3번씩 있다. 그 때마다 아빠가 항상 예를 들어서 하는 말이 “한정식 같이 맛있는거, 먹고 싶은거 골라봐라” 였다. 비슷하게 어떤 음식이 드시고 싶냐고 물어볼 때, 잘 차려진 한정식을 배불리 먹고 싶다.라고 하는 말도 자주 들었다. 실제로 아빠 생신 때 한정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고.

아빠의 머리 속에는 돈 걱정이 없다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한정식인 것이다. 내 머리 속에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일까 딱히 답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한가지는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한정식은 아니다.

수 많은 반찬들이 한상 가득 나오고 또 나오는 한정식. 배는 불렀지만 맛이 크게 기억 나는 건 딱히 없는거 같다. 찾으라면 20년 전에 해남인가 강진에서 먹었던 것 정도?

사실 맛보다 내가 더 불만인건 음식이 너무 많이 나와, 다 먹기도 힘들고 그 중 태반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진 반찬 하나하나씩만 집어 먹어도 배가 부르다. 그 중에 맛있는 반찬을 여러번 집어 먹었다고 하면, 아예 젓가락 끝에 있는 Fe 혹은 셀룰로오스 한번 못 만나보고 쓰레기통으로 가는 친구도 생긴다. 이 얼마나 안타까은 상황인가, 그 친구도 단품 식사 혹은 몇가지 찬으로 나온 친구라면 충분히 본인 역할을 했을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싫으냐. 그런건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건 아니다. 이런 말이다. 그래서 이번 내 생일에는 뭘 먹으러 가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