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요가, 독재자

1. 남들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는 루틴이 주가 확인이라던데, 나의 루틴은 나무위키 우크라이나 전쟁 침공경과 문서를 보는 것이다.

2. 오늘 마지막 요가 수업하다, 뻣뻣한 내 몸을 보며 이게 뭔 소용인가 싶어졌다. 아침마다 죽은 사람 이야기를 너무 많이 보았나.

3. 넷플리스에서 <폭군이 되는 법>이라는 6화짜리 다큐를 보고 있는데, 2화 정도 더 추가해도 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지구를 찾아온 지적생명체는 왜 발견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면, 핵무기와 같은 자멸하는 무기도 갖게 되어 결국 우주여행 전에 자멸한다.라는 이론이 있었던 걸로 안다. 요즘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5.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 저 6화짜리 다큐를 볼 때도 그랬었지만, 우타나사나 자세도 제대로 못할거 같은 사람들이 뭔 사람을 그리 많이 죽이는지. 어찌 사람 죽이는게 요가보다도 쉬운지.

부끄럽지도, 미안하지도

  1. 살다보면 말실수를 하게 되고, 어떤 말 실수들은 너무 부끄러워 종종 생각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몇년 전에 했던 말실수도 그랬다. 여행이 가볍게 이야기하기 좋다는 생각에 새로 오신 인턴분들과 밥을 먹으면서 갔다 온 해외여행지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모험도 아닌 모험담 자랑을 하다가, 한 분이 아직 해외여행은 가보지 않았고 어디어디가 좋아보여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연하게도 다들 여행을 좋아할테고 3~4학년 즈음이니 다들 해외여행은 가봤을 거라고 단정을 하고 있었다. 이곳 이곳을 가보고 싶다는 말을 너무나도 진심있게 하셔서, 너무나도 죄송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그 분이 인턴이 다 끝나고 몇달 후에, 우리가 하던 서비스에 마카오와 홍콩 영상이 올라왔다. 잊지 않고 올려준 마음에 고마웠고 미안한 마음을 좀 덜 수 있었다.
  2. 우연히 다큐3일 붕어빵편을 틀게 되었는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마냥 소소하니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러다 영등포 쪽인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하던 붕어빵집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붕어빵 일을 틈틈이 돕던 아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청년이 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할머니 나이가 된 듯 했다. 1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모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해서 그런지 서로 행복해 보였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제주도를 한번도 못 가봤는데 같이 한번 가자고, 가면 여기와 완전히 틀리다고. 완전 다른 나라 같다는 이야기를. 아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으신지 어머니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듣 내내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레이션. 어머니는 노점상 일 때문에 평생 고향과 서울 이외에 다른 곳을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2022년까지도.
  3.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중요해보이지 않는 자리를 뽑는 날이 바로 내일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움 느끼지 않도록,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도록 어려운 사람들은 더 신경 쓰는 후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붕어빵 모자도 같이 제주도 여행 정도는 가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잠 안 올 때 읽기 좋은 책

암막 커튼을 닫고 불도 다 끄고 공기청정기 마져 수면모드로 바꾸면, 잠자기 위한 준비가 끝는다. 준비는 준비 일 뿐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폰을 꺼내 전자책을 읽는다.

화면을 가장 낮은 밝기로 거기에 전자책 뷰어 밝기도 절반 이하로 낮춘다. 그리고 배경은 검은색으로 글씨는 흰색으로 해놓으면, 칡흙 같은 방안에 누워 책을 읽을 준비가 모두 끝난다.

그렇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몇권의 책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걸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허지웅이 쓴 <살고 싶은 농담>이 있었다.

자는게 목적이기에 너무 재미있지도, 재미없이도 않은 책이 이 때 읽기 알맞았다. 장편 소설 같이 긴 내용은 다음에 읽을 때 까먹기 쉽기에 적절하지 않았고, 화면을 흑백으로 해놔야 하기에 사진이나 삽화를 봐야하는 여행책이나 미술 관련 책은 적절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하나하나씩 조건을 따지다보면 도무지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 전자책 서재에는 안 읽은 책이 8~9개나 있지만 그 중 맘에 드는게 하나도 없다.

마지 못해 <내 청약통장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꺼내 읽다가 뭔가 혼나는 기분에, 자꾸 과거로 돌아가 if…, If… 만 생각하게 되니 잠이 더 오질 않아 닫아버렸다. 한국의 레전설 명작 판타지인 <드래곤라자>을 꺼냈다가 “드래곤이야, 정말 화이트 드래곤이야”하는 첫 문장에서 패쓰. 이걸 잠 안올때 조금씩 읽으면 언제 전권을 다 읽나…

전자책 서점으로 다시 돌아가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 톨스토이 단편집을 다운 받았다. 톨스토이라면 작가의 책을 읽어본 사람보다 작가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유명 작가 아닌가! 단편이니 읽기도 좋을 것 같았다.

책의 첫번째 단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초반부를 읽는데 어디서 본듯 했다. 읽어본거 같기도 하고 단편집을 읽었으면 2~3개는 기억이 날텐데 기억이 없는거 보니 아닌거 같기도 하고. 일단 기억이 안나면 다시 읽어도 새 책을 만나는 것과 같으니 읽기로 했다.

불과 120년 전 세상은 가죽만 있으면 어떤 구두도 만들 수 있는 장인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었나보다. 내일 아침은 남은 빵을 남편과 아이들과 나눠먹으면, 저녁은 어떻게 할지 걱정하는 모습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게 메인 주제는 아니다, 완전 곁가지이지만 나에겐 이게 메인으로 느껴졌다.

120년 전에 있던 배고픔도, 내일 먹을 저녁에 대한 걱정도, 외투가 단 한벌 밖에 없어 겨울에는 부부 중 한명이 외출하면, 다른 한명은 밖에 나갈 없는 사정도,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시국은 소설 속 사람들과 우리가 비슷한 어려움을 격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는 캄캄한 밤을.

단편에서는 3가지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 대한 사랑,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의 한계, 그리고 타인에 대한 봉사로 알았지만 봉사를 하는 사람이 더 큰 행복을 얻게 된다는 사실까지.

그 때보다 더 풍요로워졌지만 왜 더 어려워졌을까? 하위 80%냐, 88%, 아니면 100%냐 하는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경제적 변수, 코로나라는 변수를 제거하고 계산 할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우는 뭘 위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

잠이 안와서 읽기 좋은 책을 찾았었다. 그러나 잠은 안오고 배는 그대로 아프고, 생각나다 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점심에도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후 내내 제법 짜증이 났나보다. 도무지 재밌는게 안 보였나보다.

잘 때 읽기 좋은 책이란, 너무 재미있지도, 재미없이도 않은 책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스트레스도, 고민도, 생각도 하지 않게 하면 더더욱 좋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서울에 산지도 10여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소리. 2호선을 타려다 이걸 듣고 깨달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도무지 회사에서 집중도 안되고 잠도 자다가 자꾸 깨고 하는 이 현상을 가장 쉽게 표현해 줄 한 마디가.

요즘 마음이 이렇다. 뭔가 곧 문이 닫칠거 같고 들어가다가 문에 끼일거 같고 그렇다. 단 한번도 지하철 문에 끼여본 적이 없지만 마음이 그렇다. 저 듣기 싫은 안내 방송처럼 계속 나를 쫒는,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는.

출처

주말에 친척 모임에 다녀왔다.

친척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 덧 정치 이야기를 하기 되었고, 좀 이야기하다보니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다.

막다른 곳의 주제는 ‘독재’였는데. 현 정권이 독재적이라는 어른들의 의견과 독재를 하고 싶어서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상 할 수 없다는 나의 의견이 대립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보니 말하고 있는 ‘독재’가 다른 내용임을 깨닫고는 다시 복기를 해보았다.

어른들이 말하는 ‘독재’는 청와대에서 너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의미의 독재였다. 각 부처 장차관들에게 나눠져서 알아서 하게 할 일들까지 청와대에서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독재는 박정희, 전두환 때와 비슷한 독재였었고.

어른들이 말한 문제는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친척 어른들 중에 정치계나 언론계에 있는 분은 없으니 어느 방송이나 신문이나 글에서 본 내용을 가지고 말 하셨을 것이다.

단톡방에서 돌던 카더라~ 내용도 아닌거 보니 어느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일텐데 어딘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사이트, 포털에서는 메인이나 많이 읽은 뉴스에 그런 걸 보여주지 않았고 못 봤으니.

나의 출처는 어떠한가? 내가 보는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들처럼 모든게 다 잘 되가는 방향인가? 단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방해만 안하면 되는 일인가? 그런 내용들의 출처는 어디일까?

예전처럼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9시에 다 같이 모여 뉴스를 시청하지도 않는다.

포털에서는 매시간 뉴스를 쏟아내지만 사설이나 분석적인 뉴스는 메인에 올라오지 않는다. 축구경기로 비유하자면 “손흥민 선수가 왼발 드리블을 했습니다”, “12번 수비수가 미끄러졌습니다” 같은 기사들만 있다. 이걸 봐서는 도무지 경기가 어떻게 된지, 어떤 선수가 잘했고 못 했는지 파악이 안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는 포털에서 보는 기사들이 다 이렇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어떠한가? 어느 정당보다도 확증편향으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 공유되고 퍼오는 기사들은 듣기 좋은, 상대를 욕하기 좋은 기사들만 있다. 여기서 뭘 얻을까?

각자 다른 출처에서 다른 이야기를 듣고,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21세기가 되면 지구촌은 아니더라도 모든 의견이 자유롭게 흘러 지역감정도 사람들 간의 이견도 줄어들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반대가 되었다. 흡사 부족 사회로 퇴화한듯하다. A라는 부족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는 B라는 부족에 가면 처음 듣는 이야기가 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A와 B가 대화하고 토론하자는건 좀 더 빨리 전쟁을 하자는 이야기 밖에 안 될 것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나도 이젠 모르겠다.

한정식

이걸 싫어한다고 해야 할지 좋아한다고 해야할지.

생일 같이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밥을 고를 수 있는 날이 1년에 2~3번씩 있다. 그 때마다 아빠가 항상 예를 들어서 하는 말이 “한정식 같이 맛있는거, 먹고 싶은거 골라봐라” 였다. 비슷하게 어떤 음식이 드시고 싶냐고 물어볼 때, 잘 차려진 한정식을 배불리 먹고 싶다.라고 하는 말도 자주 들었다. 실제로 아빠 생신 때 한정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고.

아빠의 머리 속에는 돈 걱정이 없다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한정식인 것이다. 내 머리 속에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일까 딱히 답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한가지는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한정식은 아니다.

수 많은 반찬들이 한상 가득 나오고 또 나오는 한정식. 배는 불렀지만 맛이 크게 기억 나는 건 딱히 없는거 같다. 찾으라면 20년 전에 해남인가 강진에서 먹었던 것 정도?

사실 맛보다 내가 더 불만인건 음식이 너무 많이 나와, 다 먹기도 힘들고 그 중 태반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진 반찬 하나하나씩만 집어 먹어도 배가 부르다. 그 중에 맛있는 반찬을 여러번 집어 먹었다고 하면, 아예 젓가락 끝에 있는 Fe 혹은 셀룰로오스 한번 못 만나보고 쓰레기통으로 가는 친구도 생긴다. 이 얼마나 안타까은 상황인가, 그 친구도 단품 식사 혹은 몇가지 찬으로 나온 친구라면 충분히 본인 역할을 했을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싫으냐. 그런건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건 아니다. 이런 말이다. 그래서 이번 내 생일에는 뭘 먹으러 가야 하려나…

보내지 못한 후원금

1년 전 박주민 의원의 후원금 모금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열심히 의정 활동을 하는 이 초선의원은 공개적으로 후원금 요청을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이 요청에 호응을 했다. 만 이틀이 지나지 않아 후원한도를 다 채웠다는 소식과 함께 박주민 의원은 감사글을 올렸다. 그에게 후원금을 보내건 아니었지만, 정치인 후원금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된 그 일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회의원마다 받는 후원금은 제각각 일 것이다. 박주민 의원처럼 후원금 한도를 다 채우는 의원도 있을 것이고, 인지도와 지지도가 부족하여 후원금을 얼마 채우지 못한 국회의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원들은 어쩔 수 없이 법적으로 제공되는 예산 만을 가지고 의정 활동을 해야 할테니,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아무리 적은 후원금을 모집한 의원이라도 백수가 된 정치인과는 비교 불가이다.

백수가 된 정치인. 즉 선거에서 떨어졌거나 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전 의원들은 단 한푼의 정치 후원금도 받을 수 없다. 백수가 된 것도 서러운데 말이다.

내가 후원금을 보내고 싶었던 정치인도 백수인 상태였다. 고발한 사람들은 유죄를 선고 받고 고발의 대상들은 면죄부가 내려진 이상한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은 상태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난생 처음으로 후원금을 보내고자 마음을 먹었다. 물론 많은 액수는 아니고 법적으로 세액공제가 되는 한도 내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생각, 결심 그리고 행동만이 남았고 행동으로 옮기려다 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 백수 정치인에게는 법적으로 정치 후원금을 보낼 수 없다. 이 사실을 그 때 알았다.

백수 정치인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후원금을 보내려면 백수가 아닌 상태가 되어야만 했다. 지금은 못 보내지만 국회의원이 다시 되었을 때 꼭 보내야지하고 마음을 먹었고, 그게 미루고 미루어져 오늘이 되었다.

그 사이 삼선에 성공해 다시 국회에 들어갔지만 난 계속 미루고 미뤘다. 하루하루가 지나 오늘까지 오게 되었고 결국 영영 후원금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초선시절 노동자 평균 임금만 받겠다며 180만원을 제외한 전액을 당에 반납한 사람이었다. 매달 1000만원씩 받는 특활비도 안받고 다 같이 없애자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4000만원을 받았는지 이해는 되지 않지만, 내가 후원금을 보내는 것을 미루지 않았더라면, 다른 지지자들도 미루지 않았더라면 그 돈이 필요 없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미루고 미루고 미뤘던 내 탓이 조금이라도 없진 않는지, 마음으로만 지지 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지지를 보여줘야 하는게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다음 세대, 새로운 정치인이 등장하고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다면 적극적으로 응원하려고 한다. 미루고 미루다 보내지 못한 후원금도 꼭 보내고.

혹시 지금 지지하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지지해 주면 좋겠다. 그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든, 자유한국당 의원이든, 바른미래당 의원 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있어야만 당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전보다 줄어든 지지와 후원을 통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행동들이 없다면 우리의 정치인들을 눈뜬 장님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오늘의 후회를 나도 여러분들도 다신 하지 않게 되길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감각, 무감각

얼마 전에는 “죽여주는 여자”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탑골공원에서 일하는 박카스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야기를 우울하기 그지 없는 우리 나라, 그리고 그 나라에서 사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죽을지가 가장 고민인 우울하기만한 그 모습을.

감명 깊게 본 영화라 이곳저곳에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영화의 주인공인 윤여정이 영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소식을 건내 들었다.

나이가 먹어서 이제 슬픈 내용을 연기해서 예전처럼 슬픔이 쉽게 올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찍는 내내 힘들었다.

(관련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찾지는 못함)

세상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그게 하나하나 쌓이다보면 정말 저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다 심한 일을 떠올리면 지금 일은 비교적 별거 아닌 일이 될 수도 있을테니.

무감각해진다. 감정이 무뎌진다. 나도 점점 더 그렇게 될까?

지금 당장은 아닌거 같다. 어제 방송하던 “그것이 알고 싶다”를 제대로 못봤던 것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노랫 가사를 들때마다 울컥하는 것도 아직은 무감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또 슬퍼졌다.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으면 둔감하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이렇게 아무런 이유도, 일말의 힌트도 없이 일이 일어나면 더 아프다. 왜왜왜를 되뇌면 계속 상황을 반복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지만, 도무지 이유조차 가늠하기 어렵던 일이 반복해서 상상한다도 그 이유를 찾게 될 리 만무하다.

둔감한게, 무감각 해질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우리도시 예찬

한참 전에 나온 책을 뒤늦게 읽었을 땐 3가지 중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1. 예전에 읽으나 지금 읽으나 좋은 책

2. 예전에는 의미가 있었으나 지금은 의미가 없는 책 (그 사이 정설이 뒤 바뀐 내용을 담고 있는 옛 과학서적)

3. 예전의 시점과 현재의 시점을 계속 비교하면서 읽게 되는 책

지금 소개 할 이 책은 3번에 해당되는 책이었다. 2002년에 말하는 우리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14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읽는다는게 사실 가장 새로웠다. 도시적 특색을 잘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런 곳도 있었고. 반대로 여러가지로 좋은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글 속에서 우려하던대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지금은 예전 같지 않은 홍대도 있었다.

사실 그 이야기들 중 가장 아쉬운 것은 경주 쪽샘마을이 아닐까 싶다. 마을 밑에 있는 고분들 발굴 때문에 아주 오래된 마을이 사라질까 걱정이 담겨있었는데 실제로 사라졌다. 내가 지난 봄에 경주를 촬영하러 갔을 때 대원릉 돌담길 왼편이 바로 없어진 쪽샘마을이었다.

눈에 걸리고 발에 걸린다는 부산 남포동에 있던 8개의 영화관들은 어디갔는지. 위례신도시와 가까울거 같은 미사리촌 카페길은 아직 있는지. 책을 읽다보면 없어지고 바뀐 도시의 풍경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 바뀌는 도시의 모습을 기록하는게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의 또 다른 보람이 아닐까 싶었다. 책에 사진으로 나온 청계고가도로를 신기해 했듯이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남긴 도시의 모습을 보곤 신기해하는 미래 세대들이 있으리라.

죽음의 지하철

작년 강남역에서 고장난 스크린 도어를 고치던 용역 직원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한동안 2호선 강남역을 피해 다녔다. 왠지 그 곳에 가면 그 사건이 계속 떠오를 것 같았다. 그 분은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지가 꺽여 돌아가셨고,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어떤 사람은 그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강남역에 가면 그 때 본 사진이 떠오를 것 같았다.

불과 1년도 안되서 또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 때도 2인 작업이 원칙이라고 말하던 서울메트로는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2인 1조 작업이 규칙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그런데 JT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2인 작업은 애당초 불가능 했다. 각 지하철 노선 별로 할당된 작업자는 할당된 1명씩 뿐이었다. 그런데 할당된 사람이 1명인데 어떻게 2인 1조로 작업을 하란 말일까?

그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업무를 맡은 사람들의 사망률이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3명의 작업자가 사망했다. 위에 기사에 따지면 사무실, 상황실을 다 포함해도 같은 시간에 근무하는 사람이 6명 뿐이다. 넉넉잡아 3교대로 근무한다고 하여도 전체 근무자는 18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이 18명 중에 3명이 4년 동안 죽었다.

이 업무에 2년 동안 근무해야 했다면 8% 정도의 확률로 죽었을 것이다. 만약 10년 동안 근무를 했다면 절반이 안되는 확률로 죽었을 것이다. 당신보다 선임자였던 사람들 중 절반 가까이는 벌써 세상에 없을 것이다.

물론 표본이 너무 적긴 하지만 이렇게 병신 같이 사망사고가 많이 터지는 곳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에 파병을 나가도 저렇게 높은 확률로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목숨 걸고 일하는 것도 모르고 고작 월 140만원 받았다던 이 사람이 차라리 미군에 입대했다면,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행복하게 더 장수하며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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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죽은 스크린도어 수리 용역 분의 소지품에서 컵라면 하나가 나왔다. 밥 하나 제 때 챙겨먹을 시간이 없어서 컵라면을 항상 들고 다녔다고 한다. 컵라면 위에 올라온 젓가락과 숫가락이 황망스럽다.

하늘 나라에서는 따뜻한 밥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기를. 다음 생애는 월 140 주면서 하루 종일 밥 한번 제대로 못 먹는 이곳 말고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