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무감각

얼마 전에는 “죽여주는 여자”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탑골공원에서 일하는 박카스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야기를 우울하기 그지 없는 우리 나라, 그리고 그 나라에서 사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죽을지가 가장 고민인 우울하기만한 그 모습을.

감명 깊게 본 영화라 이곳저곳에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영화의 주인공인 윤여정이 영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소식을 건내 들었다.

나이가 먹어서 이제 슬픈 내용을 연기해서 예전처럼 슬픔이 쉽게 올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찍는 내내 힘들었다.

(관련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찾지는 못함)

세상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그게 하나하나 쌓이다보면 정말 저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다 심한 일을 떠올리면 지금 일은 비교적 별거 아닌 일이 될 수도 있을테니.

무감각해진다. 감정이 무뎌진다. 나도 점점 더 그렇게 될까?

지금 당장은 아닌거 같다. 어제 방송하던 “그것이 알고 싶다”를 제대로 못봤던 것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노랫 가사를 들때마다 울컥하는 것도 아직은 무감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또 슬퍼졌다.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으면 둔감하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이렇게 아무런 이유도, 일말의 힌트도 없이 일이 일어나면 더 아프다. 왜왜왜를 되뇌면 계속 상황을 반복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지만, 도무지 이유조차 가늠하기 어렵던 일이 반복해서 상상한다도 그 이유를 찾게 될 리 만무하다.

둔감한게, 무감각 해질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우리도시 예찬

한참 전에 나온 책을 뒤늦게 읽었을 땐 3가지 중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1. 예전에 읽으나 지금 읽으나 좋은 책

2. 예전에는 의미가 있었으나 지금은 의미가 없는 책 (그 사이 정설이 뒤 바뀐 내용을 담고 있는 옛 과학서적)

3. 예전의 시점과 현재의 시점을 계속 비교하면서 읽게 되는 책

지금 소개 할 이 책은 3번에 해당되는 책이었다. 2002년에 말하는 우리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14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읽는다는게 사실 가장 새로웠다. 도시적 특색을 잘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런 곳도 있었고. 반대로 여러가지로 좋은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글 속에서 우려하던대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지금은 예전 같지 않은 홍대도 있었다.

사실 그 이야기들 중 가장 아쉬운 것은 경주 쪽샘마을이 아닐까 싶다. 마을 밑에 있는 고분들 발굴 때문에 아주 오래된 마을이 사라질까 걱정이 담겨있었는데 실제로 사라졌다. 내가 지난 봄에 경주를 촬영하러 갔을 때 대원릉 돌담길 왼편이 바로 없어진 쪽샘마을이었다.

눈에 걸리고 발에 걸린다는 부산 남포동에 있던 8개의 영화관들은 어디갔는지. 위례신도시와 가까울거 같은 미사리촌 카페길은 아직 있는지. 책을 읽다보면 없어지고 바뀐 도시의 풍경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 바뀌는 도시의 모습을 기록하는게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의 또 다른 보람이 아닐까 싶었다. 책에 사진으로 나온 청계고가도로를 신기해 했듯이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남긴 도시의 모습을 보곤 신기해하는 미래 세대들이 있으리라.

죽음의 지하철

작년 강남역에서 고장난 스크린 도어를 고치던 용역 직원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한동안 2호선 강남역을 피해 다녔다. 왠지 그 곳에 가면 그 사건이 계속 떠오를 것 같았다. 그 분은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지가 꺽여 돌아가셨고,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어떤 사람은 그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강남역에 가면 그 때 본 사진이 떠오를 것 같았다.

불과 1년도 안되서 또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 때도 2인 작업이 원칙이라고 말하던 서울메트로는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2인 1조 작업이 규칙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그런데 JT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2인 작업은 애당초 불가능 했다. 각 지하철 노선 별로 할당된 작업자는 할당된 1명씩 뿐이었다. 그런데 할당된 사람이 1명인데 어떻게 2인 1조로 작업을 하란 말일까?

그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업무를 맡은 사람들의 사망률이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3명의 작업자가 사망했다. 위에 기사에 따지면 사무실, 상황실을 다 포함해도 같은 시간에 근무하는 사람이 6명 뿐이다. 넉넉잡아 3교대로 근무한다고 하여도 전체 근무자는 18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이 18명 중에 3명이 4년 동안 죽었다.

이 업무에 2년 동안 근무해야 했다면 8% 정도의 확률로 죽었을 것이다. 만약 10년 동안 근무를 했다면 절반이 안되는 확률로 죽었을 것이다. 당신보다 선임자였던 사람들 중 절반 가까이는 벌써 세상에 없을 것이다.

물론 표본이 너무 적긴 하지만 이렇게 병신 같이 사망사고가 많이 터지는 곳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에 파병을 나가도 저렇게 높은 확률로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목숨 걸고 일하는 것도 모르고 고작 월 140만원 받았다던 이 사람이 차라리 미군에 입대했다면,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행복하게 더 장수하며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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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죽은 스크린도어 수리 용역 분의 소지품에서 컵라면 하나가 나왔다. 밥 하나 제 때 챙겨먹을 시간이 없어서 컵라면을 항상 들고 다녔다고 한다. 컵라면 위에 올라온 젓가락과 숫가락이 황망스럽다.

하늘 나라에서는 따뜻한 밥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기를. 다음 생애는 월 140 주면서 하루 종일 밥 한번 제대로 못 먹는 이곳 말고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시길.

가시

미안함이 느껴지지 않는 미안하다는 말보다, 가시 돋친 말이 없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안했으면 아무렇지 않았을텐에.

엎어진, 엎지러진

20년 만에 빈병 보증금이 오른다는 소식에 술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우려가 들려온다. 그런 우려와는 별개로 보증금이 오르면 아이들에게 좋은 용돈 벌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년 전,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어디서 빈병 보증금을 받아주는 지도 모르지만, 20년 전 만해도 집 근처 슈퍼마켓 가지런히 쌓여있는 빈병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 거기가 바로 빈병을 주면 돈으로 바꿔주는 곳이었다. 양손 가득 유리병을 든 아빠를 따라 가면, 사이다나 초코우유 같은 것들을 마실 수 있었다. 베란다에 쌓인 빈병들은 탕수육 쿠폰마냥 나에겐 음료수 쿠폰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였을까, 아빠가 물을 뜨러 약수터에 나가실 때와는 다르게 빈병을 바꿀 땐 항상 따라 갔던 것 같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빠가 사이다를 마시고 싶어했다. 난 유리병을 몇개를 들고가서 사이다로 바꿔오라는 심부름을 받았다. 마침 나도 사이다를 마시고 싶었기에 흔쾌히 심부름을 하러 갔다. 끙끙대며 유리병을 옮기고 아저씨에게 병을 보여주곤 냉장고 아래에서 시원한 사이다 한병을 꺼냈다. 사이다를 먹을 생각에 얼마나 신났던지,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 시원한 사이다를 얼른 먹고 싶다는 일념하에. 그러다 넘어졌다ㅠ

죽기 직전에 삶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고 하던데, 나는 그 광경을 초등학생 때 목격했다. 돌뿌리 같은 것에 걸려 나는 앞으로 넘어졌고 손에 잡고 있던 사이다 병이 바닥과 부딪치며 산산조각 났다. 사이다는 하얗게 말라있던 콘크리트 바닥을 덮었고 곧이어 거품이 올라왔다. 부산에 가서 처음 파도를 보았을 때, 마음 속으로는 사이다 병 깨지던 모습을 상상 했을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들어와 순식간에 거품처럼 사라졌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제정신도 아니었다. 사이다를 먹을 수 있다는 설렘이 너무 큰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수습되지 않았다. 그렇게 OTL 자세로 한참동안 있었던 것 같다. 집에서 기다릴(사이다를) 가족들이 생각나 일단 집으로 갔다. 그리곤 방금 일어난 일을 설명하다가 울음이 터졌다. 무거웠던 빈병, 시원한 사이다, 깨진 사이다 병까지 이야기 하다 결국 울어버렸다.

회사 근처에 위메프에서 하는 W 카페라는 곳이 생겼다. 작은 사이즈를 주문하면, 공짜로 큰 사이즈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요즘 종종 가고 있다. 거기에 파는 메뉴 중에는 샌드위치와 핫도그도 있었는데 아침으로 먹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처음으로 그 메뉴를 먹어보러 갔다.

핫도그와 아메리카노로 이루어진 세트 메뉴는 3500원이었다. 일반 핫도그 말고 갈릭 스노윙이라는 고급져 보이는 소스가 들어간 것을 먹고 싶어서 500원을 더 냈다. 그렇게 4000원을 내고 네모난 상자에 담긴 핫도그와 작은 커피를 받고 나니, 아침으로는 좀 비싼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걸 먹는 날은 오늘 말고는 없을 것 같았다.

회사 근처라고 했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이걸 왕복해야 하는게 조금은 짜증이 났는지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안넘어졌다. 핫도그 녀석만 넘어졌다ㅠ

핫도그를 담은 상자가 밀봉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직사각형으로 긴 상자는 위 아래로 뺄 수 있게 되어 있는 형태였지만, 겉보기에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세로로 들면 핫도그 소스가 한쪽으로 쏠리기에 핫도그를 가로로 들고 있었고, 그게 빠질 수 있는 형태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리곤 그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핫도그가 인도 한가운데 떨어졌다. 20년 전 사이다를 들고 넘어졌을 때처럼,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잠시 안정을 취할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이 내 핫도그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추가금 500원짜리 소스가 있는 쪽이 바닥을, 소스가 없는 쪽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도 더럽다고 생각했던 길이기에 털어 먹을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아무렴 소스가 벌써 바닥과 합체 한 상태인데 이걸 먹을 순 없었다. 다시 집어서 일단 상자에 넣었다.

평소라면 버렸겠지만, 상황상(?) 그럴 순 없었다. 저 먼길까지 걸어와서 아침으로 사온 건데, 이걸 버리는 순간 내 아침도, 내 4000원도 다 산산조각 나는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는 결단을 내렸다. 살릴 건 살리고 버릴건 버리기로.

소스가 있는 쪽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땅에 닿지 않은 쪽만 조심스럽게 먹었다. 그 쪽에는 빵과 소세지의 일부만 있는 쪽이기에, 결국 추가금 500원까지 내가며 산 갈릭 스노윙 소스는 한입도 맛 볼 수 없었다. 무슨 맛이었으려나.

지난 20년 동안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20년 만에 다시 맞이하는 상황에서, 그 때만큼 당황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버릴 건 버렸고 살릴 건 살렸다(라지만 배고파서 땅에 흘린 걸 주워먹은거지ㅠ). 엎어진 것은 엎어진 것이고 내가 할 것은 그 뒤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게 지난 20년 간 얻은 교훈인 것 같다.

그래도 10년 뒤, 20년 뒤까지 기억 나는 건 당황하고 망치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겠지만.

ps.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닥에 널부러진 핫도그 사진을 찍어놨어야 했는데 그 정신까진 없었다.

자동차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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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논문으로 나와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자동운전에 관한 윤리적 문제이다(한글 요약 번역).

그림에 있는 것처럼 자동운전으로 운행을 하다가 앞에 사람이 있을 경우, 사람을 피하기 위해 벽으로 돌진 하거나 벽 대신 사람을 치는 선택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차에 타고 있는 운전자가 죽을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차에 치인 사람이 죽게 된다. 현재 자동운전 자동차는 후자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 것 같다.

만약 윤리적 이슈가 되어 자동운전차가 무조건 적으로 전자를 따르게 된다면, 자동운전차를 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돈내고 타는데 길에 사람이 나왔다고, 혹은 사람과 비슷한 물체가 나왔다고 내 목숨을 담보로 벽에 꼴아박는 차를 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결국 자동운전 제조사는 후자의 선택을 기본옵션으로 넣은 차량을 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선택을 한다고 해도 운전자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핸들 하나 까닥 안한 차가 사람은 쳐서 죽였다. 직접 운전 했을 때보단 과실이 적겠지만 그래도 내 차로 사람을 죽였으니 과실치사 정도의 판결을 받을 것이다.

주의감시 부주의라고 하기엔 처벌이 강하다. 억울함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게 과연 그 사람의 잘못인가. 그런 일이 몇몇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자동운전차를 이용하면서도 차가 사람을 치어도 책임이 없는 그런 차 말이다.

결국 사람들의 최종선택지는 자동운전 택시를 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택시기사가 사고를 내더라도 택시에 탑승한 승객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자동운전이 되는 자기 자동차가 아니라 호출 할 수 있는 자동운전 택시를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보면 자동운전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다. 손맛도 없고 나중에 사고나면 법적 책임만 생기는 차를 누가 사려고 할까.

몇몇 직접 운전하는 건 즐기는 사람 혹은 재산을 뽑내고 싶은 사람들만 자동차를 사게 될 것이다. 내 자동차 없이 사는 사람들은 점점 우리가 생각하는 자동차에 대한 개념은 없어지고(집 다음으로 비싼 재산이자 과시품) 이동 수단으로 개념만 남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지속되면 결국 최소 4~5인 자동차 자체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형태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이동만 목적이라면 자동운전이 되는 완전 밀폐형 오토바이가 더 효율적일테니.

그 때가 되면 우리가 지금 시계를 보듯이 차를 볼 것이다. 없어지진 않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도 아닌 그런 물건이.

코모리

집에서 동생이랑 하는 꽁트 중에 히키코모리 놀이라는게 있다. 주말에 둘 다 늦잠을 자다가 먼저 일어난 사람이 다른 사람 방으로 달려간다. 그리곤 잠자는 사람을 깨우며 이렇게 말한다.

코모리님~ 일어나세요ㅠ, 무서워도 집 밖으로 나가셔야죠!

코모리가 된 사람은 방문 앞에 서서 한발을 거실 밖으로 내놓을까, 말까 고민하는 척한다. 그리곤 무거워서 못나가겠다고 외치며 다시 침대에 들어가 잠을 이어간다 -_-

코모리는 방 밖으로 못나가기 때문에 점심으로 먹을 음식을 포장해오는 것도,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한다. 그렇게 코모리가 된 사람이 그 날 하루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생활 할 수 있도록 물신양면으로 도와준다. 실제로 약속이 없으면 잘 나가지 않기도 하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왠지 모르게 긍정적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만 가면 살도 빠지고 이성친구 생길거라는 선생님의 말만 철석 같이 믿곤 대학에 왔더니. 술만 먹을 수 있게 되었지 고등학생 때랑 별반 다를바 없었다는 모 학생의 말처럼,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기만 하면 뭔가 알아서 환상적인 일들이 일어날거라고.

접시에 음식을 담고 어디 가서 먹지?라는 생각과 함께 현실이 다가왔다. 내가 왜 혼자 파티에 왔을까?

바보는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더니. 난 진정한 바보였다. 혼자 되어 어쩔줄 몰라하는 이 기분은 예전에도 여러번 느껴본 감정이었다. 신난다~하고 갔다가 신나겠다 하곤 먼곳에서 지켜보던 기억이ㅠ

밖은 추웠고 안은 사람이 없었다. 오후부터 시작된 감기 증상에 컨디션도 안좋아서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커피를 한 손에 들곤 혼자가 아닌양 카톡을 했다. (오늘 저녁에 내 카톡을 받았다면, 저 때 보낸걸 받았을거다). 행사 진행을 위해 안으로 들어오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밖에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코모리는 가방을 챙겨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일찍 잘거다. 그리고 늦게 일어날거다. 내 방에 누군가 나를 깨우러 올 때까지 계속 잘거다.

그렇게 다시 꽁트가 시작되고 난 다시 바보처럼 또 혼자 가겠지.

청춘의 문장들

내 주소록에 들어있는 여자들 중 절반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에 한두번 만나긴 했지만 이름을 봐도 누군지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언제 어디서 소개팅을 했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난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모른채 매번 비슷한 스무고개를 하며 만난 사이지만, 가끔은 지금까지도 뚜렷히 기억 나는 대화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소설을 좋아하는 여자와 나누던 이야기다.

본인과 주위에 있는 친구들 모두가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굳이 찾아서 읽지는 않는 나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많이 작가라면 김연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화제는 우리의 주요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문장을 너무 잘쓴다는 말, 최근에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 그리고 갈수록 글쓰기 실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는 말들까지.

그 이야기들 중 중 가장 놀랐던 이야기는 단연 마지막 말이었다. 갈수록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한다니, 어떻게 어른으로 다 자란 사람이 하루하루 글쓰기 실력이 성장 할 수 있을까? 이건 흡사 드래곤볼 같은 소년 만화에서만 볼 수 있을거 같은 능력이었다. ‘세상 끝 여자친구’라는 소설을 쓴 ‘세상 끝 소설가’라고 불릴만한.

문장력이 짱짱맨이라는, 지금은 초사이어인4나 5정도 되는 문장력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김연수의 최신 작품을 결국 한참이 되도록 읽어보질 못했다. 나에게 3번째가 될 김연수의 책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보통 큰 회사에 가면 복지가 좋다고 하지만, 전 회사에서는 다른데는 없는 더 큰 복지가 두개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한달에 통신비를 50만원까지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한달에 50만원을 통신비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나에게 되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정작 그렇게 쓰다보면 어렵지 않게 50만원 가까이의 통신비를 쓸 수 있다. 동영상과 이북으로 30~40만원 어치씩 구매를 하다보면….

그렇게 미리 사놓은 책들 중에는 김연수의 책들도 몇권 있었다. 회사를 나오곤 그렇게 모아놓은 책들을 하나둘씩 읽어가고 드디어 김연수의 책을 읽을 차례가 돌아왔다. ‘청춘의 문장들’, 이름만 봐도 딱 서른살에 읽기 좋아 보이는 책이다.

10년 전에 삼십대 중반이던 김연수가 쓴 이 수필집인 이 책은 내가 이 블로그, 이전 블로그, 이전 이전 블로그에서 하던 것들을 책으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쓰는 글들, 바로 그것에 대한 책이었다. 그게 첫번째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지점이라면 다른 하나는 앞에 말한 초사이언 같은 글쓰기 능력에 관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는 김연수 작가지만 10년 전 글이라면 지금과는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지구도 한방에 부실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인 손오공도 3권 정도에서는 공룡에게 쫒기는 살짝 강한 수준(?)에 불과하다. 김연수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짱짱맨일지는 몰라도 10년 전에 쓴 글을 왠지 왠지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문장력이었다. 소설이 아닌 수필이라 좀 더 미사여구를 줄이고 좀 더 단백하게 써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예전에 내가 쓴 글들 중에 몇몇은 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10년을 꾸준히 하면 나도 초사이어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직업으로 글을 쓰는 건 엄청 힘들긴 할거 같다.

재미 자체로는 김연수가 써낸 단편집보다는 덜 재미있었지만, 기억은 더 많이 나는 책인 것 같다. 시인이 된 사연이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90년대의 대학 풍경, 요절한 조카의 이야기까지, 아무래도 픽션이 아니기에 좀 더 담담한 문체로 글을 적기에 더 오래 기억나지 않나 싶다.

덕분에 나도 까먹고 있었던 그 옛날 소개팅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찾았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 중에서도 김연수의 소설을 가장 좋아했던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을. 다시 김연수의 책을 읽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순간들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책이 나오면 나올 수록 점점 더 글이 아름다워진다며 나에게 이야기하던 그 문장들이.

참새와 파리

문을 닫고 집을 나오는데 참새 한마리가 보였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를 참새가 창에 계속 머리를 박고 있었다. 계단 쪽에는 커다란 통유리가 있다. 거기에 보이는 하늘을 보곤 나가고 싶어 머리를 박고 꼬꾸라지고 다시 일어나서 머리를 박고, 이걸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참새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아니면 나갈 창문 하나 없는 것도 모르곤 계속 창에 꼬라 박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삶과 같아 보여서 인지, 그냥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참새를 구해주고 싶지만 저렇게 움직이는 새를 직접 잡기에는 무서웠다. 그렇다고 불쌍하게 저렇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차선으로 오후에 돌아오는 동생에게 참새 구출을 부탁했다. 그 때쯤에는 참새가 힘이 떨어져서 사람이 잡으러 와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잡아다가 밖에 풀어주면 될 듯 했다. 그렇게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러다 문득 이 광경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딱 1주일 전에도 같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다만 대상과 숫자만 달랐을 뿐.

지난 주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파리 때들이 복도를 헤매고 있었다. 녀석들은 참새와 같은 심정으로 밖에 나가고 싶어 창문 주위에서 계속 왱왱 돌아다녔다. 창문 쪽에 붙어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나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냥 나가고 오갈 때 보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얼마나 보기 싫었는지 집에 들어와서 TV를 보며 쉬는데도 자꾸 파리 생각이 났다. 그래서 모기약을 집어 들고 계단으로 나갔다.

다음날 아침, 계단으로 나와보니 바닥에는 수 많은 파리들이 떨어져 있었고 소수의 녀석들만 탈출을 위한 몸부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어떠한 불쌍함이나 미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머지 소수의 파리들도 깔끔하게 없애버릴까라는 생각만 들었고 그 생각은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참새와 파리, 이 둘에 대한 나의 상반된 반응에 나 스스로 놀랐다. 일반적으로 파리는 해충이고 참새는 아니라고 하나 그렇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반응은 단지 다른 동물을 볼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해가 된다고 생각 되는 일, 예를 들어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한 반응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노숙인들을 보고 사회의 암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그들을 위한 집을 만들어 무료로 주자고 해도, 이를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파리에 대해 보였던 반응처럼 길거리에 계속 두어 일찍 없어지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 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버려졌지만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는 보호소를 만들자고 생각할지도 모를것이다.

여러 책에서 읽은 것처럼 호감도는 그 사안에 대해 판단을 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게 글을 읽고 글로만 이해했었는데, 이제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알게 되었다.

다음에 또 똑같이 파리 때를 만난다면 모기약을 들곤 나가진 않을 것이다. 참새와 대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은 그들을 없애거나 그러진 않을 것이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옥상에 있는 바퀴벌레 친구들은 어떻게 죽인담. 어서 박멸해야 할텐데.

지붕

악몽에 악몽을 꾸며 힘들어하고 있을쯤, 옥상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 때문에 다시 한번 깼다.
누가 내 방 바로 위 지붕에서 걸어다는 것 같이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스르륵스륵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건 사람 또는 쥐 혹은 고양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침 6시 밖에 안되었으니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쥐 혹은 고양이일텐데 제발 귀여운 고양이 이길 빌며 옥상으로 나갔다.

얼마 전 정리하려고 했지만 녹이 너무 심해서 접지도 못하고 그냥 세워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시선은 지붕과 높이를 맞춰가고 있었고 지붕에 점점 가까워졌다.
지붕을 보는 순간 쥐들이 나를 반기진 않을까? 그걸보곤 놀라서 사다리에서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하며 내게 필요한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쥐와 고양이 둘 다 없었다.
대신 새가 있었다.
까치 4마리가 옆집과 우리집을 오가며 쿵쿵 뛰어 놀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쥐와 고양이가 날라서 오지 않는 이상 우리집 지붕에 있을리 만무했다.
아무 것도 없는 지붕에 목숨 걸고 날라올 녀석들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얼마 잠도 못잤지만 오늘 하루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