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와 파리

문을 닫고 집을 나오는데 참새 한마리가 보였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를 참새가 창에 계속 머리를 박고 있었다. 계단 쪽에는 커다란 통유리가 있다. 거기에 보이는 하늘을 보곤 나가고 싶어 머리를 박고 꼬꾸라지고 다시 일어나서 머리를 박고, 이걸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참새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아니면 나갈 창문 하나 없는 것도 모르곤 계속 창에 꼬라 박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삶과 같아 보여서 인지, 그냥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참새를 구해주고 싶지만 저렇게 움직이는 새를 직접 잡기에는 무서웠다. 그렇다고 불쌍하게 저렇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차선으로 오후에 돌아오는 동생에게 참새 구출을 부탁했다. 그 때쯤에는 참새가 힘이 떨어져서 사람이 잡으러 와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잡아다가 밖에 풀어주면 될 듯 했다. 그렇게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러다 문득 이 광경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딱 1주일 전에도 같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다만 대상과 숫자만 달랐을 뿐.

지난 주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파리 때들이 복도를 헤매고 있었다. 녀석들은 참새와 같은 심정으로 밖에 나가고 싶어 창문 주위에서 계속 왱왱 돌아다녔다. 창문 쪽에 붙어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나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냥 나가고 오갈 때 보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얼마나 보기 싫었는지 집에 들어와서 TV를 보며 쉬는데도 자꾸 파리 생각이 났다. 그래서 모기약을 집어 들고 계단으로 나갔다.

다음날 아침, 계단으로 나와보니 바닥에는 수 많은 파리들이 떨어져 있었고 소수의 녀석들만 탈출을 위한 몸부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어떠한 불쌍함이나 미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머지 소수의 파리들도 깔끔하게 없애버릴까라는 생각만 들었고 그 생각은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참새와 파리, 이 둘에 대한 나의 상반된 반응에 나 스스로 놀랐다. 일반적으로 파리는 해충이고 참새는 아니라고 하나 그렇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반응은 단지 다른 동물을 볼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해가 된다고 생각 되는 일, 예를 들어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한 반응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노숙인들을 보고 사회의 암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그들을 위한 집을 만들어 무료로 주자고 해도, 이를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파리에 대해 보였던 반응처럼 길거리에 계속 두어 일찍 없어지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 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버려졌지만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는 보호소를 만들자고 생각할지도 모를것이다.

여러 책에서 읽은 것처럼 호감도는 그 사안에 대해 판단을 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게 글을 읽고 글로만 이해했었는데, 이제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알게 되었다.

다음에 또 똑같이 파리 때를 만난다면 모기약을 들곤 나가진 않을 것이다. 참새와 대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은 그들을 없애거나 그러진 않을 것이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옥상에 있는 바퀴벌레 친구들은 어떻게 죽인담. 어서 박멸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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